[‘강원장애인복지신문’ 창사 2주년 제1회 100만원 고료 장애인생활수기공모 ‘대상’ 당선작]이병길- 희귀병 장애를 뛰어넘어 나눔과 봉사를 펼치다

1. 이상과 현실
철없던 지난날들은 정말 즐거웠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또 오늘 하루를 보낸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지극히 적은 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을 뿐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기의 이상을 조정하고 숨을 죽이면서 현실에 만족하는 것, 그것이 거의 모든 평범한 인간들의 생활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기에게 지워진 짐을 유달리 무겁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짐은 가볍게 생각되는 까닭에 왠지 자신이 더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성인들의 말처럼 내가 도움 받기를 원하는 그 사람도 지금 도움받기를 원하는 나처럼, 다른 사람의 도움을 원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역시 이세상은 자기 혼자만이 불행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우리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불행을 조금씩 나누어 갖기 위해 서로를 찾아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리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부유하듯 걷고 있지만 누구 하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끝없이 허탕한 웃음을 웃고 그 숱한 언어를 거리에 뿌리면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다가 밤이면 우리 모두는 혼자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앓아야 한다, 철없이 어렸을 적엔 남모르게 커다란 꿈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어린 소녀가 꿈꾸는 동화적 낭만일 수도 있고 보물섬과 아프리카의 탐험을 꿈꾸는 소년의 모험일 수도 있다.
이제는 꿈과 다른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지나간 많은 날들 속에 꿈꾸던 이상이며 소망을 현실에 뿌리박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현실과는 멀기 만한 지난날의 꿈을 정리하고 조용히 세상으로 돌아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꿈만 꾸던 시절은 지났다. ‘비록 단칸방이나마 그것이 현실이라면 만족하며 현실로 돌아 가련다’는 친구의 얘기 속에서 문득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어디를 우러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진실되게만 살아가고 싶다.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신이 허락한 만큼의 내 생을 그리 담담히 살아가고 싶다.

2. 나의 삶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증A와 소아마비 중복장애를 가진 지체장인인 나는 강원도 홍천 농촌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지체장애와 함께 원인도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아 제대로 걷기조차 못하고 이유도 없이 메일 몸이 아픈 관계로 학교는 어머니의 등을 빌려 공부를 해야만 했다. 매일 아들을 등에 업고 다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병세가 악화됐다. 결국 중학교 3개월이 마지막 학창시절이 됐다. 학업을 향한 집념으로 겨우 한글을 깨우쳤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혈우병 장애인으로서 집안 생활이 전부였던 내겐 외출이란 엄두도 못 내고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양치질을 하다가 잇몸에서 피가 나는 등 일상생활 중 입은 가벼운 상처만 나도 피가 멈출 줄 몰랐다. 강원도에 있는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 했다.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중A은 잘못 넘어지거나 작은 충격으로도 타박상의 상처가 생기면 지혈이 되지 않아, 한번 병원에 가면 수혈 링거를 몇 개씩 맞고 퇴원해 오기를 반복했다.
28세가 되어서야 나는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중증A이란 걸 알았고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은 난치병이다. 일상생활 중 입은 작은 상처도 지혈되지 않는다. 반복적인 출혈로 관절기능에도 이상이 생겼다. 방황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마음을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먹었던 칠흑과도 같았던 그 시절,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고 젊은 나이, 나의 팔 다리 관절은 차츰 굳어가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40세가 못되어 세상과 이별 할 것이라 여겼다.
좌절하지 않은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매번 굳건해지고자 노력하지만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달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게 아파본적이 있겠지만 장애인들에게 있어 아프다는 것은 익숙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모든 장애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일반화하진 않겠다. 다만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경험한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시절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는 각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였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 불가능은 아니다. 현실에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조건을 탓하지 말자”라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듣게 된 멘트가 가슴에 와 닿았다.
나에게 딱 하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KBS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 프로그램이였다. 매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방송되는 “내일은 푸른 하늘”프로그램은 나의 친구이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나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준 소중한 천사였다. 꽁꽁 숨겨진 마음들을 세상과 소통해보려고 나의 처지와 일상생활속의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여 청취자 참여란에 투고하여 소통을 시도하였다. 그렇게 방안에서의 생활이 15년을 넘어서고 있을 즈음 나의 딱한 사정을 안 듯 1997년 어느 봄날 한국혈우재단에서 향긋한 봄 내음과 함께 희망을 주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서울로 하루에 몇 시간씩 걸리는 불편한 교통편을 이용하여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살기위한 사투를 시작했다.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는 인구비례 1만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출혈성 희귀난치성질환이라 예전에는 25세 이전에 뇌출혈 등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되는 희귀병이다. 나는 반복된 운동이나 한곳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다. 언제 몸 어디에서 핏줄이 내 몸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질병을 떠안고 살아가는 건 괴롭기만 했다.
요즘은 서울혈우재단에서 한 달에 두 번 홍천의 집을 방문해 외래진료로 간호서비스를 지원해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20년의 생을 덤으로 살고 있기에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하루에도 스스로 5개의 약물주사를 맞고 고통을 이겨내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수 있는 하루가 주어짐에 신께 감사의 기도 또한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주어진 생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나보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 가족이 그리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지원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게 된 봉사가 어느덧 20년이 지나간다.

3. 소외된 이웃 손과 발이 되어
나는 기초생활수급자지만 생활비를 쪼개 차곡차곡 모아서 아껴쓰는 생활 습관과 근검절약이 몸에 베어 있다. 한푼 두푼 모아 1995년부터 어려운 이웃의 손과 발이 되어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있다.
나의 집은 한겨울에도 냉기로 썰렁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보일러의 온도를 올리지 않고 무더운 여름에도 선풍기를 켜지 않을 만큼 항상 전기와 난방비를 아끼고. 또한 요즘통신사 장기할인제도 무상혜택쪽을 이용해 절약하고 있다.
실천의 모습으로 인근 춘천이나 원주의 병원진료 이동지원을 동행하여 드리고 말벗이 되어주고, 글을 쓰지 못하는 분들을 대신하여 편지를 써주고, 신문을 읽어 드리고, 우편물 심부름 및 생활필수품을 사다드리는 등 마을곳곳에 필요한 소일거리를 해드린다.
내가 주말마다 봉사하는 내후동마을(홍천군 두촌면 자은리)은 40호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으로 마을에 구멍가게가 없는 것이 아쉽다. 읍내와는 먼 거리라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용품 하나를 사는데도 아침저녁 두 번 있는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가서 시장을 보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생활용품을 사다드리기를 시작하였으나 주중에는 홍천읍에서 생활하다 주말마다 내후동마을로 돌아오면 월요일날 오후 읍내로 다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동네 어르신들은 내가 돌아오는 주말까지 기다려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무인판매대였다. 평일 날 비어 있는 집안창고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준비해 놓으면 어르신들이 필요한 용품이 있으면 가져가시고 주말에 계산하거나 현금함에 넣고 가겠 끔 했다. 그 결과 마을 어르신들의 호응도가 높아지게 되었고 너무들 좋아 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나도 흐뭇함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을 위해무엇을 도와드릴까 항상 고민하게 되었고 사진을 무료로 찍어 드리기를 생각해 내어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또 다른 봉사활동을 찾던 중 홍천군에서 재가복지 독거노인 돌봄서비스를 실시한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내 자신의 장애는 아랑곳 않고 돌봄에 최선을 다했다. 얼마 전에는 (홍천 두촌 자은3리)에 거주하는 노인분들 중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대상자를 발굴하여 후원단체와 연계하여 지원을 받게 해 드린 적이 있었다. 고맙다며 눈물을 보이셨던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외에도 홍천과 두촌을 오가며 홀로 사시면서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필요한 물품 등을 구입해 드리고 문맹 노인분들께 신문을 읽어 드리고 말벗도 해드리고 잡다한 모든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해드리면서 소외된 이웃의 손과 발이 되어 마음을 함께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부모님을 일찍 여윈 탓에 늘 그들을 볼 때마다 내 부모님 같은 생각이 들어 하나라도 더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4. 내가 받은 것을 사회 환원
이렇게 지나온 세월이 22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나마 생을 영위해 왔음은 우리나라의 의료복지정책 덕분이라 생각하며 항상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생활하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루가 더 주어진 데 감사하고 있다.
나누는 기쁨을 몸소 실천하는 방법으로 생활비를 차곡차곡 알뜰이 모아 매년 희망나눔 사랑의 열매 불우이웃돕기에 이어 해마다 지역 인재육성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홍천군 무궁화장학회 장학금을 기탁한 이후로 여러 곳에서 인터뷰 의뢰가 들어 왔었다. 사실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사랑의 실천 나눔 이었다.
그 중에서도 신체적,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자 시작한 장학금 기탁은 나의 꿈을 이루는 것같아 너무도 즐겁고 뿌듯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몸이 심하게 더 아파 결국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 뒤로 공부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불편한 몸을 안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방안에 누워서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는 것밖에 없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다가 그림도 그려보고. 글도 써보고 하다가 우연히 방송국에 청취자 사연을 보내기 시작 했었다. 운좋게 사연이 선정되어서 소정의 상품과 상금을 받기도 했다. 사연을 방송으로 듣고 아는 지인 여러분들로부터 연락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이순 나이를 넘기다 보니 주변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 또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조그맣게 시작한 나눔이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특별히 장애인중 중증 장애인들에게 노트북, 컴퓨터, TV들을 후원하고 매월 생활비에서 조금씩 쪼개어 가계가 어려운 초, 중, 고등학생중 선정해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현재는 홍천군지체장애인협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더 많은 장애인 회원들에게 보탬이 되고 이웃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떼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기까지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눔을 실천하고 나면 스스로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5. 내 인생의 은인
주변에서 내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저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28살 때 처음으로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중중A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시에는 의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장애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상당이 많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의료혜택도 다양해지고 복지지원체계도 좋아져서 이웃과 장애인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저 받은 만큼 조금씩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도움을 주신 분들 중 평생 잊지 못할 만큼 감사한 분이 있다. 25년 전 그때만 해도 희귀난치성질환인 혈우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의료혜택이 전혀 없었다. 6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만 수 천만원이 나왔다. 이미 부모님은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다. 혈혈단신인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 원무과에 갔는데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글쎄 원무과 직원이 “34만원만 내면 됩니다.”고 한 것이다.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것 같아서 재차 물어봤더니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34만원 내라고했다. 그 후로 자세히 알아봤더니 당시 홍천군청 사회복지과에 근무하던 사회복지사님이 나의 딱한 사정을 알고 심의과정을 거쳐 의료보호1종 대상으로 의료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서류 신청 절차를 밟아주었던 것이다. 너무나 감사한마음에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짐했었다. “앞으로 나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다시 한 번 관계기관과 복지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때부터 어려운 이웃을 찾아 손과 발이 됐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과 타 지역에 있는 병원까지 동행하고 말벗이 됐다.

6. 아름다운 도전
요즘 나는 몇 가지 일들을 하며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더 많은 이웃들을 돕기 위해 홍천군 자원봉사센터와 장애인복지관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몸이 불편해서 휠체어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봉사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싶다. 2015년도에는 홍천군자원봉사대학을 수료하기까지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사례를 남기며 홍천군민대상 사회봉사부문에서 장애인 최초로 영광의 꽃다발과 대상의 상패를 받았다. 봉사는 결코 칭찬을 듣고 상을 타고 인정을 받기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뿌듯함, 하나를 주면 열 개의 보람이란 열매를 얻는 이 느낌은 아마 봉사를 하는 분들은 백배 공감 할 것이다.
그 의의 사회활동으로 (사)강원도지체장애인협회 홍천군지회에서 오랫동안 두촌면과 홍천읍의 분회장으로, 운영위원으로서 책임과 자긍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자기개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예순이 지난 나이에 자개개발을 위한 노력 중에서도 매년 7월에 열리는 장애인기능경기대회화훼장식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3년 전에 열렸던 강원도대회에서는 우승의 영광을 얻어 전국대회에까지 참가했었는데 올해에는 부족한 부분을 더 연마해 내년엔 더욱 발전된 실력으로 출전하려고 한다. 그래서 한창 꽃꽂이를 연습중이다. 꽃꽂이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손에 피멍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시골에서 꽃을 꺾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모르는 것은 알때까지 꽃가게와 인터넷, 서점 등을 방문 책을 구입해 익히며 독학으로 꽃꽂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나의 소망은 강원도예선을 통과해 꼭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희망이 있다. 언제나 거짓 없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결실을 되돌려 주기에 그 대가는 만족감으로 다가온다. 나의 도전에는 이웃과 나누는 꿈이 항상 함께한다.

7. 행복은 언제나 가까이
몸이 불편해서 정기적으로 서울병원에 갈수 없을 때 한국혈우재단에서 약을 한 달에 두 번씩 직접 갖다 주고, 3일 간격을 두고 주사약 그린모노(혈우병 혈액응고인자제제)를 정맥 혈관 에다 투여를 하는데 홍천보건소 방문 간호사님이 전화만 하면 직접 오셔서 주사도 놔주시니 늘 감사한 마음은 말할 수 없다.
의료비 부담도 많이 줄어들었고 여러 가지 분야에 도전하고 있고, 조금이나마 나눔을 실천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다. 기부를 하고 다른 이웃들에게 도움을 드릴 때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뒤돌아보면 내가 소망했던 모든 것들을 다 누린 것 같다. 나의 작은 실천이 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더 이상 바랄게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손을 잡아줄 이가 많기에 그들을 돕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다. 비록 가진 것은 보잘 것 없지만 삶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세월을 지나 세상풍파를 다 이겨낸 어느 노인의 달관한 모습과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나누고 아끼고 배려하며 사랑을 나눌 것이다.
나의 바람은 내게 허락된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불우이웃과 소외계층인, 장애인 가족을 돕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장애를 가진 몸으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마음의 곡간엔 언제나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기에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기초생활수급자, 지체장애1급,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증A 투병환자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버거워 보이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30년간 장애인 권익신장을 위해 앞장서고 독거노인을 찾아 봉사활동하며 기초수급비를 아껴서 매월 장학금을 기부하고 23년간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에게 생활용품 들을 후원해 온 공로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나눔을 실천한 얼굴 없는 천사로 선정되어 지난해에는 국민추천포상 대통령표창장을 받았다.
역경을 딛고 도움을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며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모범이 되는 솔선수범의 표상이 되고 싶다.

8. 난 행복한 사람
분명 많은 장애인들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면 그것으로 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진정한 어려움은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 있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끊임없이 우릴 괴롭히고 포기하게 만든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포기하지 않는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좌절 속에서 끝끝내 딛고 일어선다면 지금보다 나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앞서 말했듯 좌절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시련이 닥치면 우린 좌절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 그건 분명 가능하다고 본다. 그 과정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다. 때론 좌절을 딛고 일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을 놓지 말아야한다. 그래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듯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고 본다.
그간 여러 곳에 정기후원 하면서 나눔과 봉사 실천으로 3년 동안 적금으로 마련한 300만원을 희망나눔 사랑의 열매에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성금을 기탁했다. 그동안 각종대회에서 수상할 때마다 모은 상금과 기초생활수급비의 일부를 꾸준히 적금으로 모은 성금이라 마음이 뿌듯하다.
“내 몸이 힘들어도 외롭고 소외된 이웃, 장애인에게 따듯한 지원군이 됐으면 합니다. 제가 20년 전 받았던 사랑을 평생 갚아도 다 못 갚고 떠날 겁니다.”
또한 생명이 다하는 날에는 최종적으로 나의 명의로 아파트 역시 다른 이들을 위해 홍천군청 주민복지과에 기부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지금도 언제 건강이 악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날마다 나는 오늘이 마지막 이라는 심정으로 봉사에 열정을 쏟으며 살고 있다.
40세가 될 때까지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지만 한국혈우재단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겨우 외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된 나는 내가 받은 그 은혜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비록 몸이 많이 불편하지만 나 또한 많은 도움을 받아온 만큼 앞으로도 항상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며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하늘이 내 생을 허락하는 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홍천에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기부천사로 나누며 봉사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게 삶의 목표이다. 오늘도 나는 “남을 도울 수 있으니 행복한 사람!” 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휠체어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에 꿈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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