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 물병자리 여자

이채민

접시를 깨뜨리고

밤 9시
머리칼이 희어지는 시간
짐승으로 읽히는 시간
조금씩 지워지는 시간

나를 먹고 버렸다고,

접시의 조각들이 무섭게 달려드는 시간

비가 내려서
그림자는 없지만
한 사람이 따듯하게 걸어왔다

얼룩 같고
쓰레기 같고
난파선 같고
독가스 같은 파편들이 우수수
여자의 몸에서 떨어진다

통증은 플레케의 여신처럼 부드러워지고
접시도 더 이상 날아오르거나 젖지 않는다

위대한 깨짐의 침묵
두 팔이 달린 물병도
위대하게 아름답게 깨질 수 있다고
어둠의 신 하둠이 더 깊은 어둠을 부리고 간다

* 이채민 시인 약력
* 충남 논산 출생, 2004년 『미네르바』 등단
* 시집: 『빛의 뿌리』 『기다림은 별보다 반짝인다』, 『동백을 뒤적이다』
『오답으로 출렁거리는 저 무성함』 외
* 현 『미네르바』 주간. 한국시인협회사무총장역임. 서정주문학상. 시예술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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