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당신의 모습을 기억 합니다

박혁종 <본지 공동대표>

나는 지금 과연 어디쯤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필자가 먼 길을 나설 때면 늘 한길까지 걸어 나오셔서 흙먼지 날리는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안 떼고 지켜봐 주셨다. 당신의 자식이 가는 길이 행여 어찌될까 마음 간절함의 절대적인 사랑의 씀씀이였다.
그리고 보니, 필자를 포함한 환갑을 넘긴 중·장년들의 마음 길은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모두가 넘어지지 않고 잘 걷는 길이 곧 나의 길이므로. 한 순간이라도, 그들과 연결되지 않은 ‘나’는 없기에 알고 싶어진다.
모든 것이 모두들의 것처럼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연기(緣起)적 관계를 알고서 부터다.
지난 금요일~토요일에는 장마 영향에 꽤나 많은 비가 내렸다. 오전에는 꽃비려니 했지만 먹구름 먹은 빗물을 토해내 버렸다. 그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피었다 거의 져가는 맥없이 가지에서 우수수 떨어진 꽃잎들이다.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떨어진 꽃잎들을 빗물이 쏜살 같이 흘러 하수구로 가차 없이 쓸어버리는 광경에 마음이 뭉클하다 못해 슬프다.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받으며 사랑받고 예쁨을 받은 지가 엊그제 인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 나니라. 얼씨구절씨구 차차차…(중략)” 필자가 어렸을 때 술에 잔득 취한 동네 아저씨가 흥얼거리던 노래 가사 말이 뱀의 촉수처럼 재빠르게 낚아채고 지나간다. 아무리 아름답게 피는 꽃이라 해도 열흘 가기 어렵다 했던가.
5060세대의 십대 시절의 모든 환경은 춥기만 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희망이라고는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외에는 모든 분야에서 어렵고 굶주렸다. 대부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뱃가죽이 등 뒤에 붙어도 자식들의 입에 풀칠해 주기가 바빴다. 등골이 휘어지도록 닥치는 일들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들의 세대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등골을 빼어 먹고 성장했다. “아~휴 설마” 라며 거짓말이라고 할 사람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런 당신들은 꽃보다 진한 색깔로 오셨다가 어느 날 조용히 우리들 곁을 떠났다. 당신들은 우리를 향해 원망도 화들짝 놀람도 없이 우리들 곁을 떠난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마음의 빚을 지고 앓아온 우리들의 아픈 곳이 꽃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흩어져 땅위에서 지고 있는 오늘, 지금의 즐거움은 물러서고 대신에 그리움과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당신들은 밭이었고 하늘이었다. 우리들도 생동하는 이들에게 젊은이들에게 “거울과 등대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먹는다. ‘존경’을 의미하는 ‘respect’는 ‘다시(re)’, ‘본다(spect)’는 뜻을 이어가는 당신들의 삶을 보고 또다시 보며 살기를 원한다.
7월의 첫 주 날이다.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매미 소리가 극성스럽다. 한 해의 절반 끝자락에 와 있다는 기별일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지금 청춘들에 비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인생을 살아가고 살아온 동안 온갖 고통을 감수 하면서까지 무엇이든 잡으려고만 했을까? 직장도 좋은 곳으로 ‘잡고’ 어여쁜 아내도 ‘잡고’ 마음에 드는 집도 ‘잡고’ 잡음을 당신들의 철학으로 살았을까? 그래야만 당신들의 삶이 충족되어 충만한 것으로 믿기 때문이었을까? 시대적 현실이 허락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 까지 ‘~잡는’데에만 익숙해있다. 자기만족과 타인에 대한 으쓱한 마음으로 ‘잡지’않으면 삶 자체가 비뚤어질 것으로 알고 있지는 않은지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한다.
반면 대문이 작고 허름한 집이지만 당신 편하게 지내면 그뿐이고, 비싼 킹크랩 대신 시장에 철따라 나오는 국산 게 한 마리는 어떤가. 그리고 꼭 가문 좋고 미색의 여인을 배필로 얻어야만 하는가. 과연 이런 식의 인생 삶을 행복이라고 거리낌 없이 노래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잡지’만 말고 ‘보기’는 어떤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 씀씀이는 이심전심의 관계 속에 이어져 있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으므로 존재의 기본 질서이기 때문이다. 꼭 잡아야만 한다면 아마 공동번영의 이익과 인류의 윤리가 허락하는 자연의 자비일 것이다. 꽃을 굳이 꺾어 보지 않아도 아름답다.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와 공존하는 사물을 자주 보는 인간임을 자부해야 하지 않을까. 올 여름 습한 더위를 이겨내는 것도 ‘잡는’ 것이 아닌 ‘보는’ 즐거움은 어떤지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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