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간보기’식 경제정책 수정해야 한다


박혁종 본지 대표

나침반(羅針盤)과 내비게이션은 사람들이 길 찾기에 아리송할 때 정확하게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땅 길은 물론 하늘 길, 바다 길, 심지어는 광활한 우주에서도 목표지점을 입력해 두면 안전하고 편하고 빠르게 지점을 찾아간다. 물론 사전에 길을 안내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있는 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새 길을 내기도 한다. 철길, 자동차길, 자전거길, 논길, 밭길 등 많다.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국정에도 길이 있다. 개인으로부터는 국민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길은 편하고 안전하고 빠르지만 개인이나 집단 등 국정운영의 주체 스스로 선택하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길은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물론 초행길이라면 물어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은 많은 전문가와 경험자 등이 어우러져 숙의한 뒤 결정하는 것이 후세대에게 무리 없이 유용한 길의 역사를 만들어 줄 것이다.
어느 길을 가든 그건 가는 자의 선택이고 몫이지만 국정을 운행하는 마차라면 편한 길, 안전한 길, 빠른 길을 두고 힘들고 어렵고 더디게 가는 길을 택하는 경우는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가.
필자가 진보적 가치를 폄훼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때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값있는 선택도 지극히 필요하지만 나라 안팎을 잘 살펴가며 결정하면 어떨까 하는 심사다.
국제적으로는 북핵을 비롯해서 국내적으로는 안보와 경제에 매우 힘든 길을 가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국내외 정세가 결정적이 아니라면 잘 마련되어 이미 있는 길을 두고 그 힘든 길을 택하는 까닭은 ‘날 좀 보소?’인가?
선조들이 닦아놓은 길도 있는데 굳이 정세도 힘든 지금의 실정에서 꼭 새 길을 열고자 하는 것은 위험이 이곳저곳에 도사리고 있다. 길은 새 마음으로 가면 새 길이다. 국민의 길은 안정속의 번영의 길이다. 자유대한민국은 그 길을 가야 한다.
지금 국내 정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업자 숫자가 7개월 연속 100만 명 이상을 돌파한 가운데, 일자리 상황이 그야말로 얼어붙고 있지 않은가.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 실업자’는 월평균 14만4천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IMF 외환위기가 이어지던 지난 2000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나쁜 지표이다. 구직 활동을 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고용시장의 구조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고용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결국에 취업자의 증가폭의 둔화가 결국에 실업자의 증가와 특히 많은 부분은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직 활동에 지쳐 취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었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구직 단념자는 월평균 50만 7천명으로, 이 지표를 집계한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근무시간을 매우 단축시켰고 취업자 수도 같이 줄였다. 그런데 정부는 인정을 안 하고 있다.
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그간의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부처와 당과 협의하여 개선, 또는 수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는 것인데 하지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 성장의 혜택이 일자리 창출과 서민 경제로 이어지지 않는 모순된 구조 탓” “연말쯤엔 정책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 하면서 “우리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정책들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는 활력을 띨 것” 이라고 한다.
같은 집에서 같은 솥 밥을 먹고 있는 김동연 부총리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수정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고, 여당인 민주당과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은 여전히 “전 정부 탓”, “정책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며 고수하려는 분위기에서 국민들의 피로감은 더해만 가고 있다.
민감도 체감성이란 이익이나 손실의 변화 폭이 작을 때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이익이나 손실의 변화 폭이 커질 경우 가치의 민감도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50점에서 55점으로 상승한 학생이 90점에서 97점으로 상승한 학생보다 더 많이 상승했다고 느낀다.
손실 회피 성향에 따르면 90점에서 95점으로 상승한 학생이 느끼는 만족감보다는 90점에서 85점으로 하락한 학생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크다. 카너먼의 측정에 따르면 크기가 같은 이익과 손실 중에서 손실이 약 2∼2.5배 크게 느껴진다고 한다. 1만 원을 주웠을 때의 만족감보다는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의 크기가 더욱 큰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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