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모델만 있나요, 우리가 평창의 대표 모델입니다

2018 평창 패럴림픽 동안 진부역에서는 평창을 찾는 내·외국인들을 환영하고, 한국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웰컴평창 굿매너 환영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곳에서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장애인 윤석규(67, 평창군 대화면), 윤승희(53, 평창군 평창읍)씨를 만날 수 있다.
인상 좋은 얼굴로 손님을 환대하는 윤석규 씨는 30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은, 지체1급 중도장애인이다.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워낙 활발한 성격에 운전을 업으로 삼고 여기저기 다녔던지라, 당시만 해도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고 단언했지만, 행여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아내와 함께 3년 동안 병원을 전전하기도 했다. 더구나 가장으로서 아무런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깊은 우울증에도 빠졌다.
윤석규 씨는 그때의 심정을 ‘딱 죽고싶은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사고 난 지 5년이 지났을 때, 장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일단 내려놓고 ‘나 자신 살리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세상에 나가야 했다. 평창 장애인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어울리고, 시도 써보고, 난타 악기도 배웠다. 무엇보다 장애인인 본인이 장애인 봉사를 위해 나섰다. 봉사라고 거창할 것 없었다. 가까이에 있는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장애인들과 어울려 놀아 주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장애인들이 즐거워했다. 그러는 사이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몸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예전의 활발했던 모습을 찾은 것이다.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장애인들과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고, 손을 잡아 준다. 외국인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에 장애인인 본인도 새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스코트에 먼저 다가간다. 그 차이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회적 약자를 우선시 하는 문화의 차이가 아닐지….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인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아직 모를 수도 있겠다는 진단을 조심스레 해본다.
이번 환영 이벤트에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네덜란드 관광객들이 기억에 남는다는 윤승희씨는 태어날 당시 난산으로 다리 골격을 다치면서 지체3급의 장애를 갖게 되었다.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지만, 부모님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우하며 키웠기에 본인의 장애를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사회로 나오면서 차별적인 시선과 불합리한 편견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장애인에 대한 몹쓸 말이 들리기라도 치면 날카롭게 대응하기도 했다.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 결과, 지금은 열혈 활동가가 되었다.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는 동시에 장애인 행정도우미로, 장애인복지관 퀼트 수업 보조교사로 일했다. 장애인 시설을 모니터링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한다.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은지라, 이번 환영 이벤트에서 장애인 방문객을 만날 때는 더욱 반갑다. 가끔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예쁜 한복이 더 화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윤씨는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시스템과 사회적 인식이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한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본인도, 여전히 장애인을 이상하게 보는 눈빛이라던가, 경계하는 행동에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는 사고든, 병이든 누구에게나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장애인에게 편리한 사회가 누구에게나 편리한 사회가 되는 거지요.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패럴림픽 기간에만 잠깐 생기다 말까봐 걱정입니다. 장애인 분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윤 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행’의 의미는, 서로를 다를 것 없이 대하되, 일상에서 장애인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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