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 ‘가을 잎사귀가 아프다’

  가을 잎사귀가 아프다

                                                                  이영춘

종합검진을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문밖,
세상 문밖에서는 자동차가 달리고 비가 달리고 구름이 달리고

창틀 안에는 노란 민들레 얼굴들이 줄지어 정물로 앉아 흐르는데
나는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고도 왜 이리
가을이 아픈가

가을 이파리들처럼 빈 의자에 앉아 있는 슬픈 얼굴들,
누가 죽었는지 영구차가 나가고 앰블런스는 윙윙 소음으로 들어오고
누군가 앉았다 간 빈 의자는 이 가을을 안고 통곡하는데
누군가 누웠다 간 빈 침대는 푸른 수의처럼 흔들리는데

아무 데도 아픈 곳이 없다는 나는
저 가지 끝에 붙어 있는 마른 잎사귀처럼
이 가을이 왜 이리 돌아올 수 없는 강물로 흐르는가

하늘 높이 치솟은 플라타너스에게 먼 눈길을 마주하고 선
내 눈은 가을이 자꾸 아파
녹슨 가슴에서 녹물 같은 슬픔 한 덩이씩 푹푹
길어 올리고 있다.

 

lee-youngchun

 

·이 영 춘
·평창봉평 출생
·전 원주여고 교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
·강원장애인복지신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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