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네모 속 얼굴들 -이영춘

적막이 커튼을 친 아파트 창틀에 기대어
나는 떠나간 이름들을 생각한다
떠나간 얼굴들을 생각한다

에로스 레인*, 비는 내리고
적막에 갇힌 네모 창들은 말이 없다

새벽 안개를 끌고 일터로 나간 얼굴, 그 얼굴들
햇살 같은 하루의 노동을 지고 돌아올 길 없는 저 깊은 허공
네모 난 허공의 집, 그 빈 집 난간에
에로스 레인, 비는 내리고

잔기침 소리로 가족을 기다리던 한 여자의 그림자도
아이들 말소리처럼 달그락거리던 그릇들도
사라진 지 오래된 빈 집, 빈 하늘 지붕

에로스 레인, 비는 내리고
네모 난 창들 속 그 얼굴들 보이지 않는다
텅 빈 허공에서 허공으로 새 떼 날아가듯
가슴 시린 사연들 창 안에서 비밀처럼 잠들고

돌아올 사람 없는 네모난 빈 집 난간에 서서
나는 오래 젖어 혼자 떨고 있는 깃발 같은 얼굴들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암호처럼, 그림자처럼
에로스 레인, 비는 내리고

*Chris Spheeris- Eros (Rain)에서 우울한 빗줄기로 유추

· 이영춘 · 평창 봉평 출생 · 전 원주여고 교장 ·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 · 강원장애인복지신문사 회장
· 이영춘
· 평창 봉평 출생
· 전 원주여고 교장
·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
· 강원장애인복지신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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