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 어느 날 강가에서

이 영 춘

저 강물에도 욕심이란 게 있을까
무엇이든 버리고서야 가벼워지는 몸,
가벼워져 흐를 수 있는 몸,

나는 하늘처럼 호수를 다 마시고도 늘 배가 고프다
셀로판지처럼 반짝이는 물결무늬 끝자락에 눈을 맞추고
오래오래 강가를 서성거린다

어쩌면 저 물결무늬는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난 이의 눈물이거나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어느 별의 반쪽이거나
오랜 침묵이 눈 뜨고 일어서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

나는 오늘도 싯다르타처럼 강가에 앉아
돌아올 수 없는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물결무늬 결 따라 강 하류에 이르면
누대에 세우지 못한 집 한 채 세우듯
조약돌 울음소리 가득 차 흐르는 강변에서
나는 싯다르타처럼 혼자 가는 법을 배운다

바라문을 뛰쳐나온 그의 황량한 발자국에 꾹꾹 찍힌
화인 같은,
세상 그림자를 지우며 가는 법을 배운다

·이 영 춘
·평창봉평 출생
·전 원주여고 교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
·강원장애인복지신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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