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상식] 성년후견인 제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2015년 연말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이 서울가정법원에 신 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면서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여동생은 오빠의 정신건강을 정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 간에 불미스러운 사태가 이어지니 의사결정을 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신청했다. 후견인 대상으로는 부인과 함께 4명의 자녀가 모두 포함됐다. 만약 가정법원이 성년후견인을 지정하면 신 회장의 정신건강 이상설은 사실로 굳어진다. 성년후견인은 한 명 또는 가족 전원이 될 수 있고, 법원이 아예 신청을 기각할 수도 있다. 법원은 성년후견대상자의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건강 상태를 파악한 뒤, 성년후견인을 지정할지 여부를 판단한다.

<성년후견인 제도와 그 취지>

우리나라에서 ‘성년후견인 제도’는 2013년 7월에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정신적인 제약이 있는 사람에 대해 법원이 의사결정을 대신할 법적인 후견인을 지정하는 것이다. 예전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 제도를 대체한 것이다.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받게 되면 가족관계등록부가 아닌 후견등기부에 따로 등재되고 재산관리와 신상보호에 중점을 두게 된다. 단 당사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 종전의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 제도와는 다른 점이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도입된 것은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 제도가 지나치게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유엔의 권고도 있었지만,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망정 개인의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 제도가 재산관리에만 집중했다면, 성년후견인 제도는 후견인이 본인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하고 치료와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돕게 하는 것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건강이 좋지 않아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과 장애인 등의 권익을 폭넓게 보호하기 위해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

<성년후견인의 신청과 결정>

일반적으로 가정법원에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과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감독)인, 임의후견(감독)인이나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제한된다. 후견인은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사회복지사,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등 전문가나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도 될 수 있다. 대개 신청 후 정신감정 등을 하기에 6개월 이상의 기간이 걸린 후에 지정된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이 후견인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성년후견인 지정사례>

20년 넘게 지적 장애인 딸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는 언젠가 혼자 남을 딸이 걱정되어 법원에 후견인 선임을 신청했다. 그녀는 “지금은 내가 거두고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저 아이가 사회 속에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돼 후견인을 신청했다. 후견인이 휴대전화 개통부터 금전거래까지 일일이 챙겨준 덕분에 어머니는 든든해졌다고 한다. 또한, 치매를 앓고 있는 한 70대 할아버지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10억 원을 뜯기다 뒤늦게 가족들이 후견인을 신청했다.

<성년후견인 제도의 운영과 한계>

선진국의 경우 후견인 신청이 일 년에 수만 건이 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2013년 7월부터 2015년 5월 말까지 4천700여 건이 신청되었고 2천400명이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었다. 선임된 후견인은 85%가 친족이고, 4%가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이며, 11%는 법인 등이었다.
최근 성년후견인 신청이 증가된 것은 질병·장애·노령 등의 사유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지만,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분쟁이 많아지면서 성년후견인제도로 해결하려는 민원이 증가된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런데, 후견인이 재산을 뺏거나 학대를 해도 처벌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당사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낮아서 후견인을 선정했는데, 그 후견인이 당사자의 이익에 반한 결정을 할 때 이를 발견하고 규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재산을 노리고 성년후견인 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발생하였다. 재산이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80대 중반의 한 사업가의 자녀는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며 법원에 성년후견인 청구를 신청했다. 이 사업가는 법원 심사에서 자식들이 재산을 노리고 자신을 치매노인으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병원에 이 사람의 정신감정을 의뢰하고서 “판단 능력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보고 자식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성년후견인을 신청하는 사례의 절반 정도가 피 후견자의 재산을 노리는 등 제도의 취지를 악용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위의 사례처럼, 부모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자식들의 불순한 의도가 많았다. 이 경우 법원도 성년후견인 요건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다.

<성년후견인을 지정하지 않아 입은 피해>

건강할 때 믿을만한 친척이나 전문가 등을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하지 않았을 때, 흔히 입은 피해 사례는 치매환자의 유언장 사건 등이다. 자필 유언장은 유언자가 자필로 그 내용을 쓰고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적고 날인해야 법적 효력이 있다.
특정인이 치매환자가 요양원에 입소하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하게 하여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유언장이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사자가 사망한 후에는 조작을 증명하기가 어렵기에 성년후견인을 사전에 지정하여 문제의 소지를 줄여야 할 것이다.
최근 가족관계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경향이 커지고, 상속인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져 상속재산분할 사건도 늘어나고 있다. 2012년 594건이던 상속재산분할 사건은 2014년에 771건으로 30%가 증가되었다.
노인이 전체 인구의 13%를 넘어 곧 고령사회가 될 것이다. 전체 노인의 약 10%는 치매환자이고, 80세 이상의 약 20%는 치매이기에 신뢰할만한 가족이나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해둘 필요가 있다. 재산이 많아서 가족간에 상속으로 인한 분쟁이 우려된 경우에는 생전에 재산을 증여하고, 생활에 필요한 재산만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령사회에서 치매 등은 피할 수 없으므로 모든 국민이 스스로 건강, 재산, 소득 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참고=서울가정법원
http://slfamily.scour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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