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신은 독선이 되기 쉽다

◇ 박혁종 본지 대표

포항에서 해병대 헬기 1대가 추락해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지난 17일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다. 순직한 해병대 장병 5명의 영결식에는 아직은 죽음을 이해 못하는 어린 자녀들은 계속 아빠를 찾았고, 스무살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큰 슬픔에 혼절까지 했다.
21일 나갈 것이라던 휴가,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있을 정오에 뜨거운 화장터로 스무살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는 이 큰 슬픔을 견디지 못했다. 영결식에 온 김현종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은 순직 장병을 애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유족들의 항의를 받고 쫓겨났다. 무엇이 유족들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한 걸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사고 다음날인 18일에 있었던 청와대의 브리핑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마린온 헬기의 원형인 수리온의 성능과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 발언에 있었다. 이에 유족들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사고 조사의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청와대의 논평에 대하여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 고 했다.
수리온 헬기 개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국방기술품질원 직원 3명을 당초 사고 규명 조사위원회에 포함시켰던 것도 유족들의 불신을 키웠다. 여기에 송영무 국방장관의 말실수는 유족들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은 국방위원회의 질의에서 “유가족들이 상당히 분노해 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묻자 송 장관은 “유가족들께서 요구하는 만큼 의전이라든지 등등의 문제가 있어서 흡족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짜증이 나시고…”라는 답변에 유가족은 영결식장에 찾아온 송 장관에게 “의전이 시원찮아서 짜증을 내요? 예? 우리가 그렇게 유가족들이 몰상식한 사람들인 줄 알아요?”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족들이 섭섭함을 느낀 것은 대통령이 공식적인 브리핑 한 번 없었고 조문도 오지 않은데 있었을 것이다. 낚싯배가 뒤집혀도 대통령이 긴급 성명 내고 야단법석이었는데 나라를 위해 순직한 군 장병들에게는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순직 장병들에 대한 영결식이 모두 끝난 오후에서야 청와대 회의가 열린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참으로 비통한 심정입니다. 다시 한 번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리고 또 유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사고 엿새 만에 나온 군 통수권자의 첫 육성 메시지였다
한편 이날 유승민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6명이 참석했지만, 당대표 급에선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장이 조문했고,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영결식은 물론 조문조차 오지 않았다.
분향소를 찾은 외부인은 2천명도 채 되지 않았고, 정치권 또한 무관심이었다.
안동 사람 이시선(李時善)이 멀리 남쪽 바닷가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날은 저물고 비까지 내려 왔던 길을 놓치고 말았다. 길 가던 이에게 묻자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자기 생각에는 암만해도 오른쪽이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왼쪽 길로 가니 마침내 바른 길이 나왔다. 한번은 북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두운 새벽에 고개를 넘는데, 틀림없지 싶어 묻지도 않고 성큼성큼 갔다. 막상 가보니 엉뚱한 방향이었다. 그가 말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긴 것은 잘못되었고(自是者非), 남에게 물은 것은 올발랐다(詢人者是), 길은 정해진 방향이 있는데, 의혹이 나로 말미암아 일어났으니 땅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졸렬함을 쓰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의 능한 바를 쓴다고 했다.
요순(堯舜)은 남에게 묻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요순보다 훌륭했던 것은 아니다. 능력을 과신해서 자기가 하는 일은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순간 독선에 빠져 실수가 생긴다. 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피란길에 올랐다. 시각장애인이 지체장애인을 등에 업고, 그가 일러주는 길을 따라 달아나 둘 다 목숨을 건졌다. 시각장애인은 두 다리가 성하고, 지체장애인은 두 눈이 멀쩡했다. 둘은 서로 장점을 취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은 이 뜻을 새겨듣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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