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뿐인 아들·딸 때문에…빈곤 사각지대 내몰린 93만 명

기초수급자보다 더 가난해도 사회복지 혜택 못 받아
정부 예산부담에 단계적 폐지 입장…‘공약 후퇴’ 비판

◇ 차상위 계층 현황(자료 : 보건복지부)
◇ 차상위 계층 현황(자료 : 보건복지부)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복지 혜택을 못 받는 저소득층(비수급 빈곤층)이 전국적으로 9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수급자보다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아들·딸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부양 의무’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가로막는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에도 불구,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빈곤층은 93만 명에 달한다. 전체 차상위계층 규모(144만 명)의 64.6%나 된다. 차상위계층은 소득인정액이 2015년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을 의미한다.
2017년 1인 가구 기준 한 달에 50만 원도 채 벌지 못하면 정부로부터 생계급여 지원 대상이 된다. 하지만 연락을 끊고 사는 아들이나 딸, 며느리, 부모 등이 주민등록상 존재하면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생활고를 비관해 일가족이 동반 자살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해 장애 가족을 돌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20대 여성 사건 등 매년 빈곤을 비관해 자살하는 이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비수급빈곤층은 2005년 177만 명 2015년 118만 명 2017년 93만 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지만, 여전히 100만 명 가까이 이르고 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식적으로 국가가 빈곤한 사람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공적부조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 중에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며 “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준 생계비를 초과하는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자활근로, 공공일자리 연계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많거나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일할 수 없는 이들의 지원 방법은 요원한 상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이들을 사회와 가정 밖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경우 막대한 예산 부담과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2018∼2022년까지 5년 간 연평균 10조1천502억 원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5년간 비용만 50조7천508억 원에 이른다. 자녀에게 재산을 사전에 증여하거나 재산을 은닉해 급여를 받으려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 주거급여는 내년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 아들·딸 등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주거급여는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생계·의료급여는 2019년부터 노인·중증장애인이 포함된 하위 70% 가구에 대해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공약 후퇴란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를 제시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현재 정부는 예산이 가장 적게 투입되는 주거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려 한다” 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빈곤층의 계속되는 죽음을 방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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