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 양을 세다-김정미

양을 세다

김정미

베개 속,
밤이 까맣게 매복되는 순간
불면의 뿔이 돋는다
뿔을 잡고 잠의 골목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억을 기억해야 한다
잠 문고리를 잡아당겨야 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베개는 어둠의 풀을 뜯는 순한 양을 복제 중이다
늘어나는 양 발자국 따라
눈동자 감춘 밤
사르락 사르락
잠이 빠져 나간 메밀베개가 헐렁하다

불면을 파종하는 깊은 밤
귀가 커지는 메밀베개 속 이야기를 읽는다
깨금발로 선 잠의 흰 발자국들
무릎이 푹푹 빠지는 어둠 속을 걷는다

꿈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잠의 이불로 나를 덮어볼 수 있을까
천국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밤의 뿔들이 까맣다

* 김정미 시인
* 1968년 강원도 춘천 출생.
* 강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수료.
*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으로 등단
*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
* 시집 『오베르 밀밭의 귀』

< 저작권자 © 강원장애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