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가을에는 ‘나’를 찾게 하소서

박혁종 본지 논설위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의 가장 길고 장대한 이 세상사에서는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리라. 처서와 백로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졌다. 가만 들어보면 여기저기 피어난 풀들, 꽃들, 곤충들이 제 몸을 비비며 사각거리는데. 나도 저들처럼 무더운 여름 잘 보냈구나 싶어 한줌 바람도 마치 선물과 같다.
가을이라지만 아직 한낮에는 기온이 높고 햇살이 따갑다. 햇살 좋은 어느 날,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 창과 현관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앞뒤도 맞바람이 쳐 집안에 가을이 둥둥 떠다녔다. 가만히 방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조용하게 글을 쓰는 간간히 여러 소리들이 귓가에 들렸다가 사라졌다.
큰 바람이 나뭇잎들을 뒤흔드는 소리, 트럭이 재활용품 포대를 실어가는 소리, 멀리 큰길에서는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가 아득히 멀어져 갔다. 바로 그때 위층 6층에 몇 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또 갓난쟁이 손자가 온 모양이다. 온 가족이 아기의 재롱에 웃고 손뼉을 치는 소리가 났다. 거실 가운데 아기를 놓고 모두한 눈으로 들어다보며 아기의 손짓 발짓 하나에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아기는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 소리들 속에 이번에는 위층이긴 한데 몇 호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년의 남자의 고함소리가 아파트 벽을 타고 흐느적거리며 들린다.
정확한 소리는 아니지만 아내인 듯 여성의 목소리 톤이 높은 것을 보면 부부가 싸움하는 소리가 틀림없다. 이후 복도는 자주 부부의 고함소리로 가득 찼다.
많은 소리들이 들렸다가 멀어졌다. 어쩌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소리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아득한 그 어느 한낮, 우리들은 각자 어떤 소리를 내고 있나 생각해 본다.
나는 세상에 어떤 소리들을 발산하는가. 뱀의 혀보다는 차라리 침묵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인격을 지녔던가. 많이 듣되 조금만 말하며 살겠다던 다짐은 어느새 무너지고 내 소리들은 세상에 소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렵다. 위층과 위층 아래 나의 집에서는. 숨죽인 내가 있었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생겨서 즐거움의 뿌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생겨서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은 동정(動靜)과 음양(陰陽)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
통달한 사람은 그 연유를 알아, 기대고 엎드림을 살피고 성하고 쇠함을 헤아려 내 마음이 상황에 반응하는 것을 늘 일반적인 정리와 반대가 되게끔 하면 이것이 고락에 대처하는 방법이 아닐까.
봄이 여름에게 묻고, 여름이 가을에게 묻는다면 가을은 아무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찰하게 하는 감사함이라고 답하지 않겠는가. 하다못해 들판 한 귀퉁이에 긴 목을 빼서 푹 숙이고 있는 수숫대는 깊은 명상이라도 하는 듯하며, 개울가의 갈대나 밭둑의 억새는 바람에 서걱거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철리라도 설법하려는 양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또 담담하고 은은한 자태로 옛 문인들의 사랑을 받은 국화가 서리를 오시(傲視)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릴케는 가을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라고 말이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이 좋은 가을날,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우리들의 일상이야 늘 복작대지만, 잠시나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밝고 고운 가을날을 감상해 보자.
국화를 읊은 시도 한 수 읊조려 보자. 그러면서 서리와 이슬 속에 피어 있는 국화의 그 고고한 모습을 닮아 보려고 하자.
그러면 아마도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덕을 닦는 데에 있어서도 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바쁘다. 바쁨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많다. 나와 가족의 의식주는 바로 그 바쁨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허나 바쁨이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나와 주변과의 관계 맺음과 여유로운 마음을 자꾸만 앗아가고 있다.
그리고 몸은 일과를 마쳤지만, 머리에선 일과를 털어낸 수 없는 경우에는 비록 우리가 물리적 휴식시간을 가진다 해도 일상의 바쁨에서 결코 벗어난 것은 아니다. 저 눈부신 것들을 바라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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