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대뜸’에 숨어 있는 ‘리스크’(risk)

박혁종 본지 대표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야설, 이양연(1771~1853)’란 한시가 떠오른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 볼 때 자기의 발자국이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읊든 시 이기도하다.
지금 우리들이 가는 길을 한번 뒤돌아보면서 선조들이 당시 갔던 길은 어떠했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조선이 임진왜란에 잘 대처하지 못한 까닭은 왜군이 전쟁으로 단련된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들은 주변적인 것이고, 주된 원인은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이다.
그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가 이치와 도리를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나라가 무너진 것은 임금부터 공경대부는 물론이고 백성까지 모두 자신의 직분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이치와 도리를 지켜야 할 임금과 관원들이 먼저 도망가는데 군대와 백성이 그 자리를 지킬 이치와 도리는 없다. 대포가 있고, 산성이 있고, 군대가 있어도 그것을 지킬 책임 있는 사람이 도망치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뿐이다.
사회, 국가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의 모임은 눈에 보이는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규칙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 사회의 규칙은 어떤 궁극적인 가치 기반 위에 있다. 필자가 말하는 이치와 도리라는 것은 그 사회의 규칙과 그 규칙이 의지하는 가치 기반을 말 한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키기를 바라고 지키리라 믿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 사이의 상호성이다. 내가 이것을 지키면 저 사람도 이것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 믿음을 배신하면 이쪽도 더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치라는 것도 그냥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한 달여 남짓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대표 및 응원단 등이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들을 맞이하려는 계획에 동분서주하고 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핵, 미사일 도발을 하면서 국제 사회가 이중, 삼중의 대북 제재 망을 구축해 놓고 있는 터라 미국은 평창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대북 제재 위반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또 북한 선박과 고려항공 항공기는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 정부는 북한에 들렀던 배는 6개월 동안 국내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고 있고, 미국은 고려항공에 금융제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크루즈를 보내 데려오는 방안 역시, 선박·항공기의 임대, 전세, 승무 서비스 제공을 금지한 안보리 결의 위반 소지가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북한에 대량 현금 지원을 금지하기 때문에 응원단, 예술단 등의 체류비 지원도 안 된다. 미 국무부도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지 않도록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사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남북대화와 관련해 동맹인 한국과 매우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했지만 통일부는 어떻게 위반 논란을 피할지 고심하는 눈치다. 국민들과 국제사회의 우려들…. 논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임진왜란을 앞에 두고 있다.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직분을 다함으로써 이치와 도리를 지켜,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고 있다. 모두가 이 시대의 충무공이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구세주를 바라기보다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망국의 원인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눈앞의 이익과 편리 때문에 불합리를 묵인하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끝까지 이치를 따지고 도리를 지켜야 한다. 이치와 도리가 없으면 결국 망할 뿐이다. 그것은 4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 같다.
“삼인행필유아사라는 구절이 논어에 나온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거기엔 내가 본받을 만한 행동이 있다”는 말인데, 지금에 꼭 염두에 뒀으면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참가를 두고 정부와 북측은 ‘대뜸’ 반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세히 연구해서 그 본지를 알아내려 힘쓰고 또 반복해서 증험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최소한 ‘대뜸’ 판단을 내리는 조급함만 없애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기자 회견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평창은 오겠다면서도 비핵화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한 연장선에 이 발언을 놓고 보면 우리의 현실이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평창의 환호가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섣부른 기대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9일 남북한 고위급 회담이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 저작권자 © 강원장애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