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올 봄이 멈추어 버리면….

겨울은 봄이라는 계절을 안고 산다. 봄을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 천천히 봄을 풀어 놓는 것 같다. 꽁꽁 싸맸던 땅의 기운을 느릿느릿 한 겹씩 풀면서 잠들었던 싹을 달래며 깨우고 있는지 모른다.
삼척시에서 7번 국도를 따라 30여 ㎞를 가다가 궁촌 사릿재에 오르면 고려와 함께 쓰러져간 공양 왕릉이 있다. 이곳에는 이른 봄이 오면 능 앞산에 진달래가 연붉은 꽃을 피워 필자는 해마다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성급한 마음에 자동차로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 겨울은 참 혹독하고 매섭게 추위가 엄습하며 지나가고 있다.
왕릉 주변에 진달래와 어우러져 하늘로 뻗어 올린 소나무 등 오래된 이력만큼이나 해마다 깊숙한 곳에서부터 썩기도 하고 부러져 사라지기도하고 꺾인 채 베어지기도 한다. 그런 시련들을 겪으면서도 남은 가지들을 모아 사방으로 다리를 뻗고 팔을 흔들며 늦겨울 새소리에 의지하여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짐짓,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회자정리의 인연 또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아직 언 땅에 심신을 움츠리며 이따금 눈보라를 맞고 있는 초목들과 심지어는 한낱 미물들까지 예외가 있으랴. 겨울, 그 차갑고 긴 시간들은 떠나고 없거나 예비 된 사람들의 이별 같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다만 외부의 일 일뿐, 필자의 마음에는 버들잎이 봄비를 맞아 살며시 실눈을 뜨고 세상을 구경하며 봄바람이 한 올 한 올 빗질을 해 주는 때나, 복사꽃이 금방 머리를 빗고 홍조를 띤 채 방문을 살짝 열어 내다보는 자태를 꿈을 꾸듯 내일을 향해 있으리라.
이른 봄에 돋아나는 풀이며 나무의 싹을 보면 필요의 유무를 떠나 무한한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이맘때를 특히 사랑하고 있다. 슬그머니 나도 그들 마음을 따라 봄 구경을 나서고 싶어진다. 한유의 말처럼 ‘일 년의 봄 중에 가장 좋은 시절’이 벌써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는 기별이 오고 있다.
그렇지만은 지금 우리는 이봄을 기대 할 수 있을까? 국력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커져 있고, 평창에서는 겨울 올림픽사상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축제가 한창이다. 이 뿐이랴. 북쪽에서도 400여명이나 되는 우리 동포들이 찾아왔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서민들은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갖가지의 불합리한 제도가 얽히고설켜 민생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물결로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잔잔한 물결은 세상을 맑히고 생명을 살리지만 사나운 물결은 세상을 뒤엎고 생명을 해친다. 걸핏하면 세상을 아수라의 싸움판으로 몰아가는 좌·우, 진보·보수의 대결, 내지 지역 갈등은 우리 사회라는 큰 배를 기울게 하고 뒤엎을 수 있는 거친 풍랑이요 무거운 짐이다.
매서운 한파 속에 또 무술년 한 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세상의 물결 위에 떠가고 있거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나를 보라고 오만을 부리지는 않는가. 쓸데없는 대립과 공격으로 우리의 배를 기울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속에 도둑처럼 숨어들어서 마음을 옭죄고 있는, 자신에게 물어도 스스로 대답할 수 없을 이 편견과 증오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배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거운 짐들을 꼼꼼히 찾아서 내려놓아 우리의 배를 비우자. 그리하여 새해에는 좌로도 우로도 기울지 않고 앞으로도 뒤로도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서, 우리의 빈 배를 드넓은 세상 물결 위에 띄워야 한다.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것은 몹시 어려운데, 그나마 정상 근처까지 도달했을지라도 어느 한 순간의 방심으로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서, 정권이란 항상 살얼음 밟듯이, 깊은 연못가에 서 있듯이, 늘 조심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국민을 살피는 것이 우선에 있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한양 시절 마당에 국화 화분 수십 개를 길렀다. 길 가던 사람이 열매 있는 유실수를 심지 않고 어찌 아무 짝에 쓸모없는 국화만 기르느냐고 타박했다. 다산은 형체만 기르려 들면 정신이 굶주리게 된다며, 실용이란 입에 넣어 목구멍을 넘기는 것만 가리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실용만 따진다면 농사나 열심히 짓지 시는 무엇 하러 짓고 책은 어째서 읽느냐고 반박했다. 다산이 초의에게 준 필첩에 나온다.
세상은 온통 실용만 외치고 쓸모만 찾는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지속적으로 갈파한 다산의 가르침에서 인문 정신의 한 희망을 읽는다. 연을 심고 국화도 길러야 정신이 살찐다.

 

박혁종 본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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