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정상회담, 획기적 관계 진전에 거는 기대와 우려

박혁종 / 본지 대표

지난 27일 금요일 오전 9시 28분, 판문점에서 남과 북은 잃어버린 11년을 단 번에 뛰어넘어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세계에 과시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으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는 양 정상의 의지를 확인하며 남과 북이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민족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무엇보다 남과 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의 목표로 확인하여 이를 선언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한 획기적 진전을 보였다. 정상회담 후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우리가 ‘한민족’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 나가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연대하자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 정신도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두 정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알리면서,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 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친척 상봉 등을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 하면서 올해 첫 이산가족 상봉은 8.15를 계기로 진행하기로 하고, 또, 고향 방문과 서신 교환까지 논의됐다. 이르면 6.15 공동선언 18주년을 계기로 상봉 행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명단과 생사 확인 등 실무적인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날짜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동안 북한은 탈북 여종업원의 송환을 요구하며 이산 상봉을 줄곧 거부해왔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실향민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두 차례 상봉 행사 이후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숨진 신청자만 7천800여 명. 생존자의 65%는 여든을 넘긴 고령이다. 두 정상이 합의한 데로 꼭 이산가족의 상봉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확인,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또 다른 큰 결실이 있었다.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한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65년 전 정전협상이 체결된 판문점에서, 새로운 평화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문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 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라고 했고 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엇보다도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 하고 이를 위해 실천적 대책들을 합의하였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규정한 것으로 확인해 주었다.
남북은 이를 위해 우선, 정전 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며 추진 시기는 연내로 명확히 하면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도 후속 조치로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국제법상 정전 협상 당사자가 미국과 중국, 북한인만큼 관련국들과도 구체적 논의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남북이 종전 선언을 약속하면서 판문점은 65년 만에 그야말로 ‘평화, 새로운 시작’의 장소로 탈바꿈하게 됐다. 이날의 공동선언이 70년의 분단 및 대결의 역사를 마감하고 민족의 항구적인 평화, 번영으로 나아가는 주춧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편으로는 철저한 국가 안보를 염두 해 두어야 한다.
400여 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무사들을 정리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자, 선조는 1590년 3월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낼 것을 결정하고, 서인이었던 황윤길을 정사로, 동인이었던 김성일을 부사로 임명해 일본으로 보냈다. 돌아온 황윤길은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은 눈빛에 광채가 깃들어 탐욕과 지략을 갖추었고, 전국을 통일한 직후라 자신감과 야심으로 가득 차 금방이라도 조선으로 쳐들어올 것으로 보였다” 며 침략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고했다. 반면,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행동은 과장되고 허세에 가득 차 있었다” 며 “군사를 움직일 저의가 있었다면 은밀하게 움직였을 것”라고 반박했다. 또, “조선과 지위를 대등하게 하기 위한 허세일 뿐” 이라고 일축했다.
두 붕당의 대립 관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후 조선의 조정은 조선 최대의 위기인 임진왜란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더욱 혼란에 빠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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