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북사업, 차근차근 신중하게 추진해야

박혁종

본지 / 대표

420여 년 전 조선을 망친 붕당의 시초는 동인과 서인의 대립과 갈등이다. 임진왜란의 참화도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빚어낸 비극이다.
이러한 분당 사태로 정계가 당파 싸움에 휘말리게 되자 조정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국력도 점차 쇠약해졌으며, 변방 야인들의 노략질도 더욱 극성스러워지고 있던 가운데 1590년에는 왜의 동태가 수상하다는 판단에 따라 통신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등을 왜국에 보내어 그곳 동향을 살피도록 했지만 이듬해 돌아온 두 사람은 서로 상반된 보고를 했다.
통신정사 황윤길은 왜국이 전쟁 준비에 한창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통신부사 김성일은 도요토미의 인물됨이 보잘것없고 군사 준비가 있음을 보지 못했기에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민심만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고 했다. 이런 의견 대립은 서인과 동인의 정치적 대결 양상으로 치달았고, 결국 동인의 세력이 우세했던 까닭에 김성일의 주장대로 전란에 대비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김성일의 주장과 달리 이듬해 4월 왜국은 대대적인 침략을 감행해왔으니, 이것이 곧 임진왜란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처참한 교훈도 잠시 40여년 후인 조선은 청나라 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파천한지 48일째 되던 날, 인조는 죄인의 신분으로 남한산성을 나와 청나라 황제 앞에 선다.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인조.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
청나라 황제가 중원을 평정하며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은 명나라와 군신관계를 유지하며 청나라를 오랑캐 취급하다가 나라를 망쳐놓은 것이다. 조선이 이렇게 국제정세 변화에 둔감했던 이유는 조기교육 때문이었다. 천자문을 뗀 아이들은 물론이고 왕세자 교육용으로도 쓰였다는 초급교재, 동몽선습(童蒙先習)에 명나라의 영원성을 노래하는 내용이 실려 있었던 것. 어렸을 때부터 명나라를 중시하는 교육을 받아온 조선 사람들은 결국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년 만에 다시 병자호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원인과 동기는 조금 다르지만 외세의 침입을 막지 못한 것은 국내 정치의 혼란과 주변 세계에 대한 외교적 실패가 가장 크게 작용 했다. 하지만 국가의 안위와 백성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안보를 주장했던 이이(李珥)는 10만 양병설(養兵說)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조선사회는 이미 오랜 평화 속에서 지배계층인 양반의 편당(偏黨), 정치 기강의 해이, 전세제(田稅制)의 문란 등 여러 폐단으로 인심이 동요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판문점 평화선언, 미·북 정상회담 등으로 대북에 대한 조급한 평화모드에 들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 북한, 북한과 러시아는 냉철 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밀고 당기고를 사방에서 진행 중이다. 30대의 북한 수령을 어르고 달래고 때론 협박도 하면서 잘 다루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 당시 결국 김정은 의원장을 못 만나고 끝이 났다. 북한은 회담이 끝나고 4시간 만에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왔다고 비난했고, 이에 미국은 “우리 요구가 강도 같으면 전 세계가 강도”라고 맞받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떠나자마자, 북한은 회담 결과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고,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의 태도는 유감스럽기 그지 없었다”며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고 하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의 의미도 깎아내렸다. 훈련 중단은 “임의의 순간에 재개될 수 있는 극히 가역적인 조치”라며 “핵시험장의 불가역적인 폭파 폐기 조치에 비하면 대비조차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단계적, 동시적 행동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싱가포르 수뇌 상봉은 무의미해지게 될 것이며 확고부동했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청와대는 미·북 고위급 회담 결과를 두고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여정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으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시작은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협상과 이행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잘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의 논평을 냈다. 희망에는 기대가 따르는 법이지만 기대 또한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클 수 있다.
‘오버슈팅(overshooting)’이란 금융 용어가 있다. 충격이 생겼을 때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과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과민 반응은 점차 가라앉아 새로운 균형에 수렴한다. 시장은 이때 대목을 만난다. 상대의 오버슈팅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가장 오버하는 자가 가장 큰 손해를 본다. 안보 없는 평화의 오버슈팅은 손익뿐 아니라 생사(生死, 肝腦塗地)까지 가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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