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잠에서 깨어나는 吾不關焉(오불관언)*


박혁종 본지 대표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다행을 알고, 남의 선함을 보고 자기의 선하지 않음을 안다(觀人之不幸, 知己之幸. 觀人之善, 知己之不善).” 구문이 묘하게 엇갈린다. 그 많은 사람을 극한의 고통에 빠뜨려 놓고 우리 정치적 이념은 변함이 없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이 선례는 두고두고 악용될 것이 틀림없다. 불선(不善)은 끝내 반성되지 않는다. 제 다행만 기뻐한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독선 앞에 지켜보는 마음만 자꾸 허물어진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고용지표가 악화됐다는 통계가 나오자, 청와대가 딱 맞춰 통계청장을 경질한 것일까? 통계청은 올해 들어 분기별 소득조사의 표본을 5천500가구에서 8천 가구로 확대했는데 소득 분배 지표가 급격히 악화한 것과 맞물려 표본 설계의 적절성에 관한 논란 때문이라면 향후 통계청 조사의 객관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통계청이 올해 조사 표본을 대폭 확대하는 과정에서 소득이 낮은 가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됐으며, 이로 인해 저소득층 소득이 실제보다 많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고 분배지표도 악화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2분기 연속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분배지표가 심각하게 악화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맞는 것은 맞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 통계청이 할 일인데 황 청장의 의사와 별개로 청와대 측이 통계청장 경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여론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는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해 통계청이 정책 수립에 필요한 지표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발탁 인사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청장 교체를 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특히 황 청장이 한국노동연구원 출신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경질 배경에 더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호남 출신인 황 청장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 데이터센터소장, 동향분석실장 등을 두루 거친 노동 및 고용통계 관련 전문가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 통계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연구기관 중 한 곳이다. 지역 안배를 포함해 문재인 정부와의 ‘코드’ 문제를 고려한다면 황 청장만큼 적절한 인사를 찾기도 어렵다. 통계청 내부에서도 정치문제를 떠나 객관적인 통계 산출을 강조해온 황 청장의 경질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 반한 것으로, 이 때문에 경질이 아니라는 청와대의 해명은 설득력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준석 바른 미래당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 때 물가 집중관리 품목 잡아서 관리하다가 오히려 수치가 악화되어서 욕을 먹었지만 그렇다고 통계 만든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지는 않았다”며 이전 정권과 문제를 비교해 지적하기도 했다.
작년 7월 가수 이효리가 최근 오랜 칩거를 마치고 새 음반을 냈다.
이 중 ‘변하지 않는 건’이란 노래의 노랫말 속에는 “며칠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식빵” 주름을 지운 낯선 모습의 자기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을 적은 것이라 한다. 그녀는 그것이 가짜라도 겉으로 번드르르해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현상을 썩지 않는 식빵처럼 이상하고도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런 위험한 생각들을 바꾸어야 변치 않는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 제주도 대자연 속에서 거울을 바라본 이효리,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성찰하는 시각이 많이 닮아 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도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을 향한 변화의 발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냉장고에서 꺼내 놓은 식빵/여전히 하얗고 보드랍기만 한 식빵/ 변하지 않는 건 너무 이상해/ 변하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해/ 얼마 전 잡지에서 본 나의 얼굴/ 여전히 예쁘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저 이상한 얼굴/ 변하지 않는 걸 위해 우린 변해야 해”란다. 이효리, ‘변하지 않는 건’ 노랫말이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현실 정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거꾸로 현실 정치의 명분이나 기준에 맞춰서 과거 역사를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안타깝다.

*오불관언(吾不關焉)상관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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